쥔장의 발자취

 

 

1979년~1990년 연기에서
우리 가문은 충남 연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서면 쌍전리가 본적이며 여전히 선영과 큰댁은 그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분가해서 서면 일대에 거주하다가 제가 태어난 1979 년에 이르러서는 서면 봉암리에 우리 가족의 둥지를 틀었습니다. 뒤로는 함박산 자락을 끼고 왼편으로는 개울이 흐르며 전면으로는 논밭이 펼쳐진 아름다운 이층집이었습니다. 이 곳에서의 삶은 아직까지도 저에게 아름답고 여유로운 시골에서의 삶을 동경케 하고 있습니다.
1990년~1998년 청주에서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저는 가족과 함께 나름 도시인 청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여전히 부모님께서는 청주에 살고 계십니다. 치고 받고 싸우면서 정든 친구와 아침마다 함께 자전거로 통학했던 친구 그리고 서로를 독려하면서 공부했던 친구...  제게 있어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게 해 준 이곳은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어 실제로 청주에 거주한 기간이 오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입니다. 
1998년~2010년 서울에서
대학에 진학하면서 나의 서울살이가 시작 되었습니다. 생소한 서울 생활이긴 했지만,  촌놈인 저에겐 새롭고 흥미로운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으로 주어진 자유를 슬기롭게 사용하지는 못한 것 같네요. 그렇지만 젊은 날이 아니면 언제 그렇게 살아볼 수 있겠냐며 자위해봅니다.  2002년에 가까스로 학부를 마치고, 2010년에는 드디어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궁구하며 힘들면서도 즐거운 역설적인 시간이었습니다.

 

2010년~2011년 아산에서
졸업과 동시에 삼성전자로 입사하게 되었고 제조센터 실습과정으로 아산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고향인 충청도이라지만, 아산은 낯선 장소였고 사업장이 위치한 탕정은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그래도 회사 생활을 시작한다는 기대감과 두려움으로 삼개월 남짓한 아산에서의 생활은 금새 지나버렸습니다. 그러나 파견 기간동안 근무한 생산기술1그룹에서의 회사 생활 경험과 그곳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은 지금까지의 회사 생활 내내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2011년~2017년 용인에서
파견을 끝내고 돌아온 저는 용인 동백에 첫 나만의 삶의 터전을 잡았습니다. 회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동백이지만, 여자 친구(지금의 마눌님)와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서였지요. 신입으로서의 기억, 행복한 연애의 추억, 신혼의 단꿈, 미니미 탄생 등 많은 즐거움을 동백에서 누릴 수 있었습니다.  2013년에는 죽전에 우리 가족의 작지만 예쁜 집을 장만할 수 있었고 그 곳에서 세 식구가 오손도손 티격태격 하루하루 즐거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2017년~2019년 천안에서
갑작스러운 아산 발령으로 우리 세 식구는 잠시간 떨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반년도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천안에서 다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린스트라우스에서 시작된 우리의 천안살이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곳에서 파트장도 되었고 많은 인연을 만들면서 삶을 이어가게 되었고 우리의 동휘는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2019년~2020년 미국 아이오와에서
Visiting Researcher라는 다시 없을 기회를 잡아 40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휴식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멈추지 않고 달려왔던 인생을 돌아보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집사람과 아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 년이 그렇게 짧을 줄은 미처 몰랐는데, 아직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인생의 한 순간이네요
2020년~2023년 천안에서 홀로
Visiting Researcher를 마치고 천안으로 돌아왔지만, 집사람과 아들은 미국에서 지낸 시기입니다. 또한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전 세계가 힘들었던 시기이기도 한 것 같네요. 지난 일년의 추억으로 집사람의 꿈을 지원하는 마음으로 살아낸 시간이었습니다. 행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람 있는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2024년 천안에서 함께
집사람이 학위를 마치고 무려 2년 반만에 우리 가족은 Reunion을 맞이하였습니다. 어느새 동휘는 부쩍 자라 있었고 돌아와서 적응하느라 힘들어도 했습니다. 집사람은 학원 강사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였고 결국 24년 여름에는 학원을 개원하는 쾌거?를 이룩합니다. 과연 나에게도 셧터맨으로서의 인생이 허락될 것인가? 두근두근 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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